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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을 권하는 사회

임상심리학/이상심리학

by 셀리스트 2023. 3. 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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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하우스 "에코와 나르키소스"와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나르키소스와 자기애


워터하우스는 판도라 등 그리스 · 로마 신화를 비롯하여 셰익스피어의 희곡 등 고전적인 주제에서 그림의 소재를 얻어 작업한 화가로 유명하다. 흔히 그를 신화를 가장 신화적으로 그리는 화가라고 평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을 주인공으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마치 꿈속에서 만나는 듯한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중 오필리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 유명하다.


〈에코와 나르키소스〉 역시 그가 즐겨 사용하는 그리스 · 로마 신화의 유명한 이야기를 묘사했다. 나르시스로 알려진,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화이다.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피우는 것을 도와준 괘씸죄로 에코에게 다른 사람의 말 가운데 마지막 음절만 반복하는 무서운 형벌을 내린다. 이 저주로 인해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여위어만 가던 에코는 나르키소스도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해달라고 복수의 여신에게 빈다.

 

그리하여 나르키소스는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샘만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탈진하여 죽는다(또는 샘물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그가 죽은 자리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이를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먼저 나르키소스보다 오히려 에코의 시선이 눈길을 끈다.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지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헤라의 저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처지가 그녀를 위축시키고 있는지, 어설픈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다.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릴 것만 같다.

 

나르키소스는 오직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땅에 몸을 밀착하여 사랑하는 이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듯하다. 오른손은 바위 밑으로 늘어뜨려 물속의 연인을 만지려 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가 사랑받는 자이고, 구애하는 이가 구애받는 자가 된 상황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자기애(自己愛)를 뜻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여기에서 유래됐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용어로 사용한 후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에 의하면 나르시시즘은 자기의 육체나 자아가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는 인간은 본래 유아기에 자신을 관심의 대상으로 하는 1차적 나르시시즘 단계에 있다가 점차 외부의 대상(어머니나 이성)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애정생활이 위기에 직면하여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게 될 때,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2차적 나르시시즘 단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2023.03.09 - [임상심리학/DSM-5] - B군 성격장애(Cluster B Personality Disorders)의 분류 - 자기애성 성격장애

 

B군 성격장애(Cluster B Personality Disorders)의 분류 -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진단기준 301.81(F60.81) 과대성(공상 또는 행동상), 숭배에의 요구, 감정이입의 부족이 광범위한 양상으로 있고 청년기에 시작되며 여러 상황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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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은 우리말로 속칭 공주병이니 왕자병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관심은 있기 마련이지만 여기에 병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그 상태가 장애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아의 중요성이 너무 과장되어 장애에 이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아 감각의 인플레이션 상태라고나 할까. 나르시시즘의 특징은 자신에 대한 집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흥미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 대한 현실 인식이 떨어지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나르시시즘을 권하는 사회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열병을 앓고 있다. 현대판 나르키소스는 더 이상 옷을 흙에 더럽히면서 물속을 응시하지 않는다. 불편하게 엎드리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적당한 높이에 자신이 있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물을 찾아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나를 비출 곳은 어디에나 있다. 도시의 어디에나 있는 쇼윈도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대사회의 나르시시즘은 쇼윈도형으로 진화했다. 도시의 거리는 쇼윈도가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지 이미 오래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스티브 르블랑(Steve LeBlanc)의 회화 작품 〈에코와 나르키소스〉를 보자. 거리에 한 쌍의 남녀가 서 있다. 그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들답게 물 빠진 청바지에 간편한 남방차림이다. 간편한 운동화가 자유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 여인이 손을 뻗어 무언가 말하려고 하지만 이 남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머리를 쓸어 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쇼윈도는 마치 점령군처럼 당당하게 도시의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공손한 소비자가 되어 마네킹의 이상적인 몸매에 주눅이 든 채 주인을 응시한다. 쇼윈도 안의 마네킹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자신과 마네킹을 동일화시키고 진열된 옷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한다. 쇼윈도에 투영된 몸매와 패션을 관찰하고 감상한다. 심지어 자발적으로 쇼윈도 속의 마네킹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거리에는 외부에서 안을 볼 수 있도록 대형 유리로 환하게 개방해 놓은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이 가득하다. 밖에서 잘 보이는 창가의 자리일수록 빨리 자리가 찬다. 쇼윈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감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는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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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소스와 자기애(自己愛)

정보화사회는 또 다른 나르시시즘의 공간을 창출했다. 숲 속은 물론이고 구태여 쇼윈도가 있는 길거리로 나갈 필요조차 없다. 이제 스스로 사람들이, 그것도 아무 제한 없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인터넷상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는 21세기 나르키소스의 무대 역할을 한다.

 

원래 웹에 기록하는 일기나 일지를 뜻하는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미니 형태로 만들어 놓은 미니홈피는 자신을 한결 자세히, 정교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 속에서 현대의 &디지털 유목민(e-nomad)&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사회의 나르시시즘은 누드 열풍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직업 연예인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누드집을 내거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르시시즘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그냥 평범한 자신의 누드를 캠코더를 이용해 촬영한다. 왜 찍느냐고 하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자기 몸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은 욕구라고 한다. 누드 나르시시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나르시시즘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일반적이다. 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프로이트 이래로 정신분석학 차원에서 병리학적으로 접근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또한 어쨌든 신화의 결말이 에코와 나르키소스 모두에게 비극적으로 나타난 것도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 요인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우월감과 자기도취는 일차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한 자기도취가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낳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자기애의 이면에서 타인에 대한 경멸이 자라난다.

 

언뜻 보기에는 나르시시즘이 자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만큼 자기만의 개성을 고취시킬 것 같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연예인의 패션을 모방하면서 자기만족을 느끼곤 한다. 대부분의 경우 문화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유행에 공손하게 복종함으로써 개성은커녕 동일한 모습으로 획일화된 나르시시스트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에 대해 전혀 다른 문제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나&는 개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의미라고 보는 시각이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이와 관련하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비개인적인 것이 도덕적 행위의 고유한 특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처음엔 보편적 이익을 고려하는 일이 바로 모든 비개인적 행위가 칭찬을 받고 특별 취급을 받는 이유였다는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개인적 고려를 함에 있어서만이 보편을 위한 이익 역시 최대가 된다는 것, 따라서 엄격한 개인적 행위야말로 보편적인 도덕성에 상응한다는 것 등이 현재에 이르러 점점 더 긍정적으로 통찰됨에 따라 위와 같은 견해에 대한 뚜렷한 일대 변혁이 절박해진 게 아닐까?

 

자신을 완전한 개인으로 만들며 모든 행위에 있어 개인의 최고 안녕을 주시하는 것, 이것이 타인을 위한 저 동정적인 감동이나 행위보다도 더 진보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는 여전히 우리에게 있는 개인성을 너무도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 훈련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자. 오히려 우리의 감각은 그것으로부터 떼어져서, 국가와 학문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마치 그 개인성이란 것이 희생으로 바쳐져야 할 사악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바쳐져 왔던 것이다.

니체는 그동안 인류에게 도덕적인 것을 비개인적인 것으로 여겨 왔지만 그가 보기에 진정한 도덕성은 반대로 개인적인 요소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성, 즉 자신에 대한 사랑이 사악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겨지는 도덕률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한다. 오히려 우리 인류가 개인성을 너무도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병을 앓고 있어서 문제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흔히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사회와 집단을 위해 희생한 사람을 도덕적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민족독립운동에 참여한 지식인들을 도덕적이라 하고, 개인적인 창작에만 몰두했던 지식인들에게는 비도덕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곤 한다. 독재 통치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도덕적이고, 소시민적인 삶을 산 사람은 이기적 · 비도덕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니체는 이러한 시각이 잘못 &훈련&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니체는 무엇보다 자신을 완전한 개인으로 만들어야 하고 모든 행위에 있어 개인의 최고 안녕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를 통해 우리는 서구의 근대적인 사고, 즉 개인의 탄생을 엿볼 수 있다. 고대 노예제나 중세 농노제 아래서 개인은 별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를 동물과 마찬가지로 취급했다.

 

양계장에 있는 수백 마리의 닭 중에 한 마리가 개별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하듯이 신분적으로 예속된 노예와 농노도 마찬가지였다. 시민혁명을 통해 신분 해방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개인은 의미 있는 주체가 될 수 있었다. 홉스(Thomas Hobbes), 로크(John Locke), 루소(Jean Jacques Rousseau) 등 대표적인 근대 사상가들이 논의의 전제로 개인을 설정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 그리고 니체가 루소를 비롯한 근대 사상가들을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전제에 해당하는 개인과 개별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은 그 역시 근대 사상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 준다.

집단성이 유일한 가치로 여겨지는 전통 사회에서 개인은 사실 의미 없는 것이었다. 특히 신분제 질서에 기초한 전통 사회에서 개인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것은 노예주나 노예, 귀족이나 농노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만이 아니라 노예주도 자유로운 개인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봉건사회에서는 농노만이 아니라 귀족도 자유로운 개인일 수 없다.

 

노골적인 억압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배계급도 일상적인 긴장 상태에 있어야 한다. 호위병에 둘러싸여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자신을 관심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발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나르키소스는 우리에게 집단이나 국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나, 즉 개인의 가치를 생각하게 해주는 존재라고 보는 태도인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나르키소스를 집단과 국가만이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전체주의적 사회에서 개인으로의 시선과 접근을 촉구한 선구자로 본다면 지나친 과대망상일까?

그리스 · 로마 신화를 보면 앞부분에는 어떻게 이 세상이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마치 성경의 창세기편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사한 설정에 기초하고 있다. 대홍수 이야기도 공통적이고 성경에서 이브가 한 역할을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는 판도라가 한다. 그리고 신화의 중간 부분까지는 신의 이야기이다. 거의 올림포스 산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다가 조금씩 인간 이야기가 나온다.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로 가면 인간이 주연 역할을 하고 신은 조연으로 밀려난다.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하여 자립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나르키소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집단에서 개인이 독립해 가는 적극적인 과정을 보여 주는 상징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대판 나르시시스트들은 이와는 상당히 다른 자기애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상당 부분 상업화의 영역에서 문화 자본의 논리와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러한 시각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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