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책 15분 독서) 2. 자기애성 환자(The Narcissistic Patient)의 임상실제에서의 면담

 

정신병리와 정신역동

PSYCHOPATHOLOGY AND PSYCHODYNAMICS

 

자기애적 특성 Narcissistic Characteristics

 

과대성 Grandiosity

자신은 유일무이하게 특별하고, 비상한 재능을 가졌으며,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과장된 느낌은 자기애성 환자에서 보편적인 특성이다.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심지어 천재라는 이러한 부풀려진 시각은 대개 현실과 맞지 않는다.
 
하지만 특히 예술, 정치, 과학, 경제분야에서는 때때로 자기애성자들이 상당한 전문적 재능을 갖고 있으며, 비평가들로부터 칭송을 받아 이들의 과대성이 강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애성자들의 우월감은 내적 취약감에 대한 허술한 방어일 뿐이며, 대개 객관적인 연관성은 거의 없다. 한 30세 작가는 첫 면담에서 “저는 영문학에 있어 버지니아 울프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요"라고 큰소리쳤다. 그녀는 책을 출간해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저작물 또한 소수에 단편적이었으며, 동료작가나 편집자, 비평가에게 보여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는데, 이에 대해 환자는 “사람들은 제 걸작을 이해하지 못할 거에요. 더군다나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아마 엄청나게 저를 시기할 걸요"라고 설명하였다.
 
극단적인 형태의 오만함 또는 화려한 자기애성자는 쉽게 눈에 드러난다. 부끄러워하는 자기애성자들은 뚜렷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스스로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속으로는 무시당했다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자신의 특별한 존재감과 기운이 자동적으로 주변사람들에게 느껴져 반응을 보이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으면 이들은 속으로 부글거린다. 부끄러워하는 자기애성자들도 화려한 자기애성자들과 똑같이 특별함에 대한 갈채를 받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과대적 환상이 드러났을 경우 멸시와 창피를 당하게 될까봐 마음속 깊이 두려워한다.
 
자신의 과대성을 강화시키는 방법에 있어 매우 성공적이곤 하는 오만한 자기애성자들과는 달리, 대개 부끄러워하는 자기애성자들의 과대성은 대부분 환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들의 마음속 깊은 야망은 가장 최고의 것들이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억제 덕분에 이들은 강렬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피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취를 위해 열심히 하는 것에는 실패와 불인정의 위험성이 동반되기 때문에 이들은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성과마다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에는 그 밑에 은밀히 과대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자그마한 인정에 행복감과 심지어 들뜬 기분을 잠시 느낄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못하다. 곧바로 이들은 자신보다 나은 다른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한다. 이들은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해 과대평가하면서 동시에 평가절하를 한다. 조직에서 승진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적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근무일지는 누더기가 된다. 크게 성공할수록 결국 실패하여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느낀다. 보다 오만한 자기애성자들은 성공을 자신에 대한 특권이나 암묵적 허용으로 받아들여, 윤리와 규칙에 대해 불일치한 언행을 보이려 한다.
 
자기애성자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을 놀리는 재치를 보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유머감각이 없고 자신을 비웃을 수 없다는 점이 이 장애의 특징이다. 탁월한 매력과 아름다움, 지능을 가졌다는 환상을 흔히 갖고 있다. "내가 있는 곳 어디서나 나의 비범한 광채가 빛나죠"라며 한 자기애성 환자는 우쭐해하며 말했다.
 
변덕스러운 경력 탓에 프로그램에서 탈락위기에 놓여있던 분자생물학과 대학원생은 "전 분명히 노벨상을 받게 될 겁니다. 제 지도교수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아인슈타인을 보세요. 그도 교수들과 잘 지낸 적이 없어요"라고 확신하였다. 이 사례는 자기애성의 조직적인 측면을 말해준다. 야망과 능력이 있는 과학자라면 누구나 노벨상을 타길 원한다. 이는 모든 과학자들의 꿈이다.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과학자들도 이러한 소망을 갖고 있지만 수상 여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점을 알며 수상에는 정치적인 요소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반면에 병리적인 자기애성자들은 자신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며, 현실적 가능성 면에서 현실성이 없는 자신의 과대성을 지지해주는 이러한 포상에 대해 필사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
 

2023.02.24 - [상담 심리학/교육 심리학] - 수학자의 지혜가 담긴 명언

수학자의 지혜가 담긴 명언

 
 

자기애성인 사람에게는 과대성과 그와 정반대인 깊은 부적절감이 공존하고 있다. 임상양상은 이 둘 중 하나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실패한 것에 불만을 보이거나 사랑을 하는 데에 있어 미숙함을 보이지만, 그런 다음 곧바로 이들의 과대적이고 건방지며 오만한 측면이 떠오르게 된다 아니면 처음에는 과대적이고 과장된 측면을 보이다가 치료를 받으면서 나중엔 심한 부적절감과 내적 공허감이 맨 앞으로 드러난다.
 
 

공감의 결여 Lack of Empathy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없음이 자기애성인 사람들의 특징이다. 공감empathy이란 다른 사람과 동일시를 하여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경험하는 능력을 포함하는 복잡한 심리현상이다. 공감은 동정sympathy과 구분되어야 하는데, 동정이란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괴로움에 대해 진정한 연민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공감은 듣는 이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동시에 어느 정도의 거리는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능력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점이 대부분의 자기애성 환자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혼외정사를 한 사실이 발각되는 바람에 이혼의 위기에 처하게 된 자기애성 환자가 "제 집사람이 왜 저를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돼요. 집사람은 극도로 흥분했고, 애들은 저한테 화를 냈으며, 제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집사람은 그저 절 괴롭히려는 것 같고, 그녀가 고용한 그 살인마 변호사는 더해요!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저도 굉장히 괴롭습니다"라며 격렬히 호소하였다. 그는 부인의 상실감, 배신감, 분노감에 대해서 공감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행동의 결과로 인해 그 또한 매우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부인이 불쌍하게 여겨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보다 미묘한 형태는 흔하다. 낮 동안 배우자에게 있었던 안 좋은 일 때문에 자신의 편안한 저녁시간이 방해받게 되면 자기애성자들은 짜증을 낸다. 집안 문제 때문에 배우자가 자신의 성공을 칭찬해주지 않으면 이들은 격렬히 폭발을 한다. 배우자가 "무신경하다는 비난은 자신이 희생자라고 믿는 환자에게는 정당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느낌을 알아줄 수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자기애성이라는 진단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덜 극심한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종종 내적 느낌에서가 아니라 외적 단서로부터 추론된 것이다. 다른 경우에서 이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 느낌에 대해 거의 감정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공감적으로 듣는 듯 보이지만,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취약점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자신을 비난한다고 느껴질 때 이 점을 그에게 맞서는 데 사용한다. 이러한 반격은 의도적인 것이며 의식적 비열함을 보여준다. 강박적인 사람들 또한 비난을 받았을 때 반격을 하지만, 이들이 그러는 이유는 자기애성자들에게 특징적인 의식적 가학성 때문이 아니라 무의식적 분노와 요령의 부족 때문이다.
 
 

특권의식 Entitlement

 

대개 자기애성 환자에서 개인적으로 특권을 가졌다는 강한 느낌이 동반된다. 한 자기애성 환자는 “물론 제가 순서를 기다릴 필요는 없죠"라고 주장하였다. 첫 면담에서 서로가 편한 시간을 잡으려 할 때 차츰 이러한 진단이 드러난다. 환자는 "그 시간은 제 근무스케줄 때문에 좋지 않은데요"라고 말했다. “점심시간 전에만 가능해요. 11시는 안되나요?" 세상 스케줄이 자신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확신에서 특권의식이 드러난다. 면담 후반부에 환자는 "제 부모님은 차갑고 냉정하셨어요. 그분들은 저에게 감정적으로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죠. 물론 전 최고가 되려고 노력해야 했죠; 다른 어느 누구도 그렇게 못 할 거에요"라고 털어놓았다. 자기애성자들은 자신이 겪었다고 믿는 감정적 박탈감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대할 때 무관심과 경멸적 오만함을 보이게 되며, 이는 어린 아이 때 무시당했던 경험을 되돌리려는 것이다.
 
매우 명석한 대학원생 한명이 논문 표절이 발각되려던 시점에서 정신과를 방문하였다. 자발적으로 진료실을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정신건강 전문가를 만나보는 것이 이 고발건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어 결과가 좀 나아질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면담이 진행되면서 점차 그는 "아마 제 컴퓨터에 있던 파일이 뒤섞여서 제가 다른 사람이 쓴 걸 제 것으로 착각했나봐요"라고 인정을 하였다.
 
본문 전체가 마치 그의 것인 양 자신의 논문에 들어가 버린 단순한 전산상의 오류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고발은 취하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쨌든 간에 학과 내에서 제일 명석한 건 접니다. 재판에서 그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거짓말과 실수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면담가가 묻자 그는 혼란스러워했다. 그건 바로 고의성이 있느냐의 차이라는 점을 그가 인정하기까지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이 예는 자기애성 환자들이 갖고 있는 자동적인 특권의식을 말해준다. "내가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것도 내 것이 될 수 있다. 정직하게 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정직은 좋은 것이 아니다.”
 
 

수치심 Shame

 
수치심은 죄책감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으로 자기애성자들에게 흔하면서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정신생활에서 수치심은 죄책감과 똑같이 중요한 정서라고 Morrison은 말한다. 수치심은 어떤 실패나 부적절감이 드러나 결과적으로 굴욕감을 겪으면서 생겨난다. Morrison은 수치심이라는 명칭 내에 창피함, 당혹스러움, 그리고 낮아진 자존감 등을 포함시켰다.
 
자기애성자들은 의도했던 성취가 실패하거나 비난받게 되면, 이에 대한 반응으로 자기self는 부적절하고 결함이 있다고 느낀다. 여러 편의 중요한 저서로 명망을 얻은 학문적으로 성공한 한 자기애성 환자는 자신의 최신 논문이 유명 학술지로부터 거절당하자 굴욕감을 느껴 우울해졌다. 그녀는 비통함과 절망감에 "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제가 해놓은 것들은 다 자질구레하고 보잘것 없어요. 제 인생엔 아무 것도 없어요. 사람들로부터 숨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외쳤다. 숨고 싶은 마음은 수치심을 겪을 때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수치심이 무척 괴롭고 극심한 감정으로, 이런 경우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밖에 없다고 느끼며, 이는 궁극적으로 "숨어버린다"는 의미가 된다.
 
 

시기심 Envy

 
시기심은 자신의 우월감을 강화하고픈 바람에서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자기애성자를 괴롭힌다. 잦은 열등감은 타인을 평가절하하고 싶게 만든다. 한 하위직 도서출판가는 "그녀는 승진을 했는데 저는 못했다는 것에 화가 나요"라고 불평했다. "내가 그 여자보다 더 예쁘고 섹시하고 훨씬 더 매력적이에요. 단지 그 여자가 똑똑하고 그녀랑 함께 작업했던 작가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이유인데, 그 여자는 보잘 것 없어요.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걸 회사에서는 왜 모르는 거죠? 좋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좋아하는 게 문제는 아니죠. 이런 모욕 때문에라도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에요." 한 정신보건 전문가는 첫 면담에서 "그래요, 당신은 특출하고 존경받을 만하신 것 같네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신과 분야에 대해서도 저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더 유능하다는 듯이 말씀하고 계시는 군요"라고 말하였고, 이는 면담가로서의 그의 시기심이 드러난 것이었다.
 
 

자기애적 평가절하 Narcissistic Devaluation

평가절하는 자기애성 환자들의 대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자기애성 환자와 경계성 환자에서 특징적인 평가절하의 유형 비교에서의 차이점은 "경계성 환자"편에서 논의될 것이다.
 

2023.02.26 - [임상심리학/DSM-5] - 신체증상 및 관련장애(Somatic Symptom and Related Disorders)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

신체증상 및 관련장애(Somatic Symptom and Related Disorders)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

 
 

심한 자기애 Severe Narcissism
심한 자기애성자들은 자기애성 스펙트럼의 극단을 보여준다. 자신의 착취적이고 종종 강하게 공격적인(심지어 난폭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나 심지어 조금의 양심조차 없기 때문에, 이러한 환자들은 면담가에게 혐오스럽게 보일 수 있다. 수백만 명을 죽이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던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악명 높은 독재자들은 비인간성의 상징으로, 이들은 악성 자기애성자 malignant narcissist라고 불린다. 이것이 진단적으로 정확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이는 이러한 독재자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와 일치한다. 심한 자기애는 반사회성 성격과 중복이 되며, 어떤 경우 심하게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잔인함, 폭력, 심지어 살인과 같은 무시무시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
 
심한 자기애성 환자의 정신병리에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가 있다. 하나는 심각한 자아 결손 ego deficit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동성, 좌절에 대한 낮은 내성, 그리고 만족을 지연시키지 못함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초자아기능의 부재이다. 이러한 결손의 조합은 이러한 환자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난폭한 폭발행동의 핵심이 된다. 초자아는 억제하기 힘든 충동성을 통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폭발적 양상의 자기애적 분노가 심한 자기애성자들의 삶을 채색한다. 자기애적 분노는 전반적이며 무제한적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좌절과 반박을 당했을 때 이들이 겪는 상상의 혹은 실제의 모욕감에 의해 이러한 분노는 촉발이 된다.
 

자신의 소망이 반대에 부딪혔을 때 이들은 자신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따라서 기저에 깔려있는
자신의 미약한 전능감에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없애고 싶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 실제로 애인이나 배우자를 살해하기까지 이르는데, 이들의 극단적인 병리적 내적 세계에서 이러한 행동은 완전히 합당한 것이기 때문에 심한 자기애성자들은 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심대한 초자아 병리는 충동성과 결합되어 심한 자기애성 병리의 핵심이 되며, 자신의 파괴적 행동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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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별진단 Differential Diagnosis

중요한 감별진단에는 경계성 인격장애, 반사회성 인격장애, 그리고 일련의 양극성 장애 등이 포함된다. 비교적 순수한 형태로도 존재하지만,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경계성 성격장애가 혼합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DSM-IV-TR에서는 강박증 환자와 자기애성 환자 사이의 구분점이 명확해 보이지만, 실제 임상 상황에서 이 둘은 종종 혼동이 된다. 이는 특히 강박적 측면과 자기애적 측면을 모두 갖고 있는 혼합된 성격장애 환자들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구분점은 두 양상을 모두 갖고 있는 환자를 치료할 때 특히 중요한데, 임상가는 특정 시점에서 자기애성 역동이 환자의 행동을 유발한 경우에는 강박성 역동에 대해서는 해석해주지 않는다.
 
혼동될 수 있는 첫 번째 영역은 강박증 환자에서의 감정적 격리emotional isolation로, 이는 자기애성자들의 냉정한 무관심과 혼동될 수 있다. 강박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원치 않는 감정반응을 다루기 위해 최소화minimization, 지식화intellectualization, 합리화rationalization 등의 기제들을 사용한다. 자신의 업무에 대해 비난을 받은 강박증 환자는 "난 사장한테 화나지 않았어"라고 말한다. "기분은 좋지 않았어; 약간 언짢기는 했지; 하지만 화난 것은 확실히 아니야."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화가 치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바보 멍청이라고 이미 평가절하하기 시작한다. 강박적인 사람들은 재치가 없고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지 못하다.
 
자신이 한 말이 다른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종종 눈치 채지 못한다. 만약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면, 이들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방어적이 되어서는 기분 상하게 하려던 것이 아니라고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한다. 다른 경우에서 강박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는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눈치 채지만, 진정으로 이를 마음에 두지는 않으며 혹 그러더라도 이를 무시하기로 결심한다. 나중에 이 일이 의식수준으로 돌아와 이를 두고 곰곰이 생각하거나 반추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자기애적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며, 이들이 타인의 감정에 냉담하게 무관심한 것은 진심이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래: 그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잘난 척을 더 잘 한다 뿐이지"라는 태도로 합리화를 한다.
 
강박적인 사람들이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애적인 사람들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이는 성격병리를 이해하기 위한 이 둘의 감별진단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이다. 치료자의 혼동에 대한 해결책은 잠재된 대상 관련성object connection을 찾는 데에 있는데, 이는 완벽주의적 추구의 부분이거나, 다른 말로, 어떤 무의식적 동기가 행동을 유발하였는가를 이해하는가하는 문제이다.
 
환자가 얻거나 또는 잃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무엇인가 - 완벽주의적 욕동에는 어떤 갈등이 관여되어 있는가? 강박적인 사람들은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냈을 때 숙달감과 권력감, 통제감 등을 느끼며, 자신의 부모상 인물parental figure로부터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재화된 대상internalized object으로부터 칭찬과 어느 정도의 긍정적 강화를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그러나 존경받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해내야만 한다는 기분에 화가 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칭찬받는 것을 하나의 분리된 인간으로서 존경받고 -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느낀다.
 

2024.04.24 - [임상심리학/DSM-5] - 악몽장애(Nightmare Disorder)진단기준

악몽장애(Nightmare Disorder)진단기준

 

 
분리된 정체성separate identity에 대한 확고한 개념 덕분에 강박적인 사람들은 진정한 성취감을 느낄 수가 있다. 이는 이들이 건강한 대상상object image을 내재해왔기 때문이다.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며 부모의 완벽주의적 기준에 잘 부응해왔다고 이들은 느낀다. 이들은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무의식 수준에서 강박적인 사람들은 존경을 사랑과 동일한 것으로 보며, 사랑은 벌어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애성자들이 완벽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좋게 보이려는 부모의 과대적 소망을 이들이 충족을 시켜주는, 매우 착취적인 사건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명석함과 아름다움, 성공을 빛내주는 하나의 도구로서 착취를 당한다.
 
자기애적인 아이가 칭찬을 받게 되면, 아이는 이를 분리된 인간으로서 인정받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부모가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완벽함을 더 강화해줬을 뿐이라고 느낀다. 자신의 지상 과제는 부모를 좋게 보이도록 하거나, 또는 그의 선택에 따라 나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완벽함을 추구하다가 실패하게 되면 굴욕감이나 수치심, 모욕감, 무가치감 등을 느낀다.
 
반면에 강박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을 한 것인지, 지시를 따르지 않았거나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는지 혹은 은연중에 거역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 경향이 크다. 이는 강박적인 사람들이 항상 반항하고 도전하는 것에 대해 모순되는 충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행동doing과 취소undoing의 의식행위가 생겨나는 부분이며, 강박적인 사람들이 항상 자기-의문self-doubt으로 괴로워하는 이유이다.
 
때때로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모욕한 부모를 당황하고 수치스럽게 만들기 위해 무의식상에서 고의적으로 실패하기도 한다. 이는 피학적인 방식의 앙갚음이며, 앙심 때문에 그런 행, 동을 하는 것이다. 앙심에 가득 찬 복수의 달콤함은 실패로 인한 개인적 고통과 당혹감을 상쇄시켜준다. 이는 자식이 명문대에 합격하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부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낙제를 해버리는 자기애적이고 피학적인 청소년의 경우에서 흔하다.
 
자기애적 완벽주의의 또 다른 측면은 칭찬을 받기 위해 환자가 기울이는 노력의 양과 관련이 있다. 강박적인 사람들은 성공에는 기술과 노력이 모두 필요함을 알고 있으며, 이들은 기꺼이 노력하려 애쓴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많은 인정을 받으려한다.
 
강박적인 사람과 자기애적인 사람. 둘 모두 권력을 쥐고 타인을 통제하고픈 지나친 욕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강박적인 사람들은 자기 의문에 괴로워하며, 성공을 추구하다가 상처를 줬을지 모를 사람들에 대한 영향 때문에 고민스러워한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강렬한 욕구에 대해 갈등이 없어 보인다. 두 유형의 환자 모두 업무수행에 대해 억제를 보이는데, 이는 성공에 수반되는 무의적으로 상상된 위험에 대해 서로 다른 개념을 갖는다는 점에서만 구분이 가능하다. 업무에 대해 강박적인 사람들은 순종하고 받아들여지지만 동시에 결과적으로 복종적이고 나약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과 제멋대로이고 반항적이지만 결과적으로 강하고 독립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 둘 사이의 갈등 측면에서 바라본다.
 
업무에 있어서 강박적인 사람들의 꾸물거리는 문제점에서 이러한 역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동시에 자신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고 보이는 동성의 경쟁자에 대한 양가감정적인 태도에서 강박증 환자들의 외디푸스적 역동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자기주장을 굽히면서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은 우두머리가 되어 타인의 통제를 받지 않기를 원한다. 이들은 남들이 알아주는 지위와 권력, 통제력 등을 바란다. 전형적으로 이들은 권력에 요구되는 책임을 떠안으려하며 때때로 필요 이상으로 그러기도 한다. 이들은 종종 책임감에 대해 불평을 하지만 이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양심적으로 책임을 다한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존경받고 떠받들어지기 위해 권력을 바라지만, 책임은 원하지 않아 때때로 상관의 권리라는 구실을 내세워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이러한 과정은 자기애성자들이 성공한 업적에 따른 영광은 남겨둔 채 책임만을 전가하려는 데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강박적으로 우유부단한 대학원생 한 명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쓰면 지도교수님이 가장 마음에 드셔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정말로 쓰고 싶어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내가 교수님의 생각을 따라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몰두한다. 자기애적인 대학원생은 어느 교수님이 제일 힘 있고 명성이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 자신에게 쉽게 영광을 가져다줄 번쩍이는 주제를 원한다. 이런 원칙의 예외로 보이는 경우로, 한 자기애적인 대학원생은 학부생 때 더 높은 점수와 칭찬을 받았던 독일문학이 아니라 러시아문학 쪽으로 논문 주제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 선택의 숨은 동기는 러시아문학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석함을 몰라준 것은 큰 실수였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입증하고 그들을 모욕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단어의 뜻을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사전을 찾아보러 가는 강박적인 사람들과는 대조된다.
 
이들도 자신의 정확함과 숨은 우월성을 알아주길 원하지만, 그 동기는 상대방을 모욕하려는 것이 아니다. 편집성 인격자들 또한 자신에게 피해를 줬다고 느끼는 상대방을 가학적으로 모욕주고 싶어 한다. 편집증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아주길 원하며,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사과받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가해자 측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사죄를 하면 이들은 마침내 용서를 해준다. 반면에 자기애성 성격은 한 번에 완전히 상대방을 없애버린다. 강박적인 성격은 기본적으로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진정한 사과를 받아들인다.
 
연극성 인격은 감별진단이 어려운 또 하나의 딜레마이다. 이런 유형의 환자들 또한 시선받기를 바라며 관심의 초점이 되기 위해 상당히 현란하다. 자기애적 양상이 종종 연극성 성격 경향과 혼합된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좌절되면 연극성 환자들도 분노를 폭발하기 상당히 쉽다. 하지만 이들은 진정한 사랑을 하고 타인과 깊은 애착을 형성할 수는 있다. 연극성 환자들은 보다 매력적이고 따뜻하며 자신의 욕구를 항상 맨 앞에 두지 않을 수도 있다. 매력과 아첨, 가성-무력감pseudo-helplessness을 보여주는 방법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조종한다.
 
반면에 자기애성 환자들은 타인의 감정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특권의식과 공격적인 자기주장을 이용한다. 담당 임상가가 최근에 살이 찌면서 건강이 안 좋아 보였을 때 두 환자의 걱정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구분점이 잘 드러난다. 연극성 환자는 임상가의 건강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을 하며 식이요법 전문가가 되어 임상가에게 효과적인 식단을 짜주려고 한다. 환자는 임상가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애성 환자는 치료자가 뚱뚱하다는 것을 창피해한다. "선생님같이 생긴 사람이 어떻게 제 치료자가 되겠어요? 나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줄 거예요. 제발 제 개인 트레이너를 만나서 살 좀 빼십시오. 비용은 제가 낼게요." 또 다른 구분점으로, 연극성 환자는 자신의 친구를 찾는데 반해 자기애성 환자는 보여줄 수 있는 "스타"를 찾으면서 동시에 "내가 이 사람들이랑 비슷할까?" 라는 생각을 한다.
 

2023.04.30 - [임상심리학/DSM-5] - 불면장애(Insomnia Disorder)진단기준

불면장애(Insomnia Disorder)진단기준

 

반사회성 인격장애와 심한 자기애성인격장애의 감별진단은 정확히 내리기가 힘들며 이 둘이 공존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범죄자 가문은 정상에서 벗어난 반사회성 문화를 보여준다. 이런 집단의 구성원은 사회 주류에서 벗어나는 매우 뚜렷한 그들만의 도덕적 코드를 따르면서 다른 구성원들과 우정과 동맹의식을 지속할 수 있다. 이들은 충성심이 매우 강하며 특히 혈연관계에 있는 구성원에게 그러하다.
 
TV와 영화산업은 이들 조직에 대해 대중적인 매력을 심어놓았다. 이들은 종종 무자비하고 쉽게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런 행동에서 이들은 자기애성자가 아니라 명백한 반사회성자들이다. 심하게 자기애적인 구성원은 집단의 결속과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은 이런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양극성 장애 스펙트럼은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진단군 중 하나이다. 과거(DSM-II)의 병명인 경조증 인격hypomanic personality은 과대적이고, 허풍이 세고, 혈기왕성하고, 지나치게 낙천적이고, 과도하게 자신 있고, 야망에 불타고, 목표가 원대하며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으로 기술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짧은 우울 삽화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며 주고받는 관계give-and-take relationship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기애성자들의 특징처럼 속으로 질투심에 불타거나 평가절하하거나 복수심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치료를 찾는다면, 이는 대개 우울증 때문이다. 직업에서의 실패나 잘못된 관계에서의 심한 체면 손상 같은 자기애적 손상narcissistic injury이 흔한 유발요인이다. 기분부전증, 자기애성 인격장애(수줍어하는 유형) 그리고 피학성 인격장애 사이에는 상당히 중복되는 면들이 많다.
 
 
출처: 임상실제에서의 정신과 면담/Roger A. Mackinnon, M.D.
Robert Michels, M.D./Peter J. Buckley,M.D./ 박성근, 정인과 옮김/ 하나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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